안녕하세요, 제주도에서 살기 시작한지 막 보름을 넘긴, 여행하는 여수니입니다.
여행하는 사람 말고, 저의 또 다른 부캐를 여러분들께 잠깐 소개해 드리자면, 저는 2020년 7월부터, 반려동물 일러스트를 그리는 그림작가로 일년째 활동중에 있습니다.
혹시 제 그림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아래에 인스타 링크를 남겨둘게요!
www.instagram.com/yeosuni_design/
제주도를 여행할때마다 자주 보이는 유기견들을 보면서 제주도에 살게되면 꼭 유기견 봉사활동을 하리라 작년부터 다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드디어 마음을 먹고, 어제 제주에 있는 한 유기견 보호소인 '제주한림쉼터'에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
딱히 표현할 길이 없어, 거창하게 '봉사활동' 이라는 말을 썼는데, 실상은 유기견들이 하루를 보내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케어만 도와주고 왔네요. 제가 쉼터에 도착해서, 오전 9:30부터 12시 30분까지 약 세 시간 정도 했던 일들은 견사(유기견들이 생활하는 공간) 안의 배설물 치우기, 마시는 물 갈아주기, 사료 채워주기 이렇게 세 가지 였습니다. 한마리 한마리 보듬어주고 산책시켜 줄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가 보니 이 세 가지 일만 쉴틈없이 두 시간반을 하고 나왔네요.
매일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의 인원이 달라서 상황은 그때그때 알 수 있지만, 제가 갔던 날은 저와 다른 봉사자님 두 명이었어요. 그래서 쉼터를 관리하시는 소장님과 저희, 총 세 명이서 쉼터안의 모든 견사들을 치우는데만 온통 정신을 집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주말이고, 날씨도 폭염수준으로 더웠다보니 이 날은 봉사하시는 분들이 평소보다 적었던 것 같다는 것이 제 추측입니다.
처음 간 유기견 보호소의 광경에 정신이 조금 팔리기도 했는데, 다행히 같이 동행하셨던 봉사자님은 이미 경험이 꽤 있으신 분이라서 옆에서 보고 따라하기에 좋은 케이스 였어요. 한림쉼터의 소장님도 처음인 저에게 바쁘신 와중에도 견사를 청소하는 방법이나, 순서를 차근차근 잘 알려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청소하는 견사들을 하나씩 세어 보다가, 나중에는 세는 것이 의미가 없단걸 깨닫고,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맡겼던 것 같네요. 견사마다 안에 들어 가 있는 유기견 수나, 종류들이 다 다른데 소장님께서 필요에 맞게 유기견들을 구분을 해 놓으신 것 같았어요. 예민하고 개인적인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은 한 두 마리씩 들어가 있기도 했고, 아픈친구들 따로, 덩치크고 활발한 친구들은 따로... 그래서 한꺼번에 견사를 모두 열고 아이들을 푸는 것이아니라, 정해진 순서대로 견사를 열고 아이들이 밖에 나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산책할 수 있도록 한 후, 봉사자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배설물을 치우고 물을 갈고, 사료를 채워주는 순서였어요. 그리고 견사 청소가 마무리가 되면 유기견들을 다시 견사에 넣고 간식을 주게 됩니다. 이런식으로 하나씩 견사를 케어하는 것이 제가 한 활동이었습니다. 어렵진 않았지만, 견사의 수가 꽤 많아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어떤 일이든 끝은 있는 법! 더위에 지쳐 입을 뗄 힘도 없을즈음 견사청소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더운 여름, 조금이라도 유기견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 수가 많다보니 이렇게 치워도 유지하는 데는 하루도 가지 않을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정말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필요하구나... 봉사활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막막하면서도 먹먹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반려동물 그림을 그릴때, 항상 행복하고 사랑받는 동물들만 그리다 보니, 아픈 유기견들의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있을까, 충격받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 예상과 달리, 밝고 예쁜 웃음을 짓는 친구들도 있었고, 사람을 잘 따르는 순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물론 아픈 친구들, 겁이 많아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손길을 많이 타서 인지, 새로운 사람을 보고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기는 유기견들을 보니,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찡했습니다. 그리고, 왜 진작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마음아픈건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위해 방어하는 행동이었고, 실상은 유기견을 케어하는데는 봉사자 한 사람의 손길이라도 더 필요한 실정이었구요.
사람도 동물도, 아픈모습을 잘 못보는 성격 탓에, 티비에서 유니세프의 활동모습이나, 후원자들이 필요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면 차마 보지 못하고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쑤였어요. 그런 저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도 나는 인류애가 부족한 사람일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아마 공감을 너무 잘 하는 성격이라서 아픈 모습들에 이입이 너무 잘되는 점, 그리고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에 괜한 죄책감이 느껴지는 점 등, 결론적으론 세상을 보고싶은 모습만 보면서 살아가는 약간은 이기적인 타입인가봐요.불쌍함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지는 저의 이기심을 앞으로는 조금씩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최근에 이렇게 몸을 쓰는 일을 한 적이 없던 저라, 집에 오자마자 씻고 뻗어서 세 시간을 내리 자 버렸습니다.
함께 봉사했던 봉사자님과 점심먹고 집에 도착하니 세 시쯤이었는데,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더라구요. 아침에 나가서 토요일 하루종일 한 일은 딱 한 가지였는데,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닌 그 어느날보다 더 보람있고 하루를 잘 보낸 느낌이었습니다.
다음주 토요일에는 소소동산이라는 유기견보호소를 방문하려고 해요!
그럼 또 후기들고 찾아오겠습니다...!
모든 유기견 댕댕이들아, 앞으로 행복한 꽃길만 걷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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