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좀 붙은 산행 3일차는 첫날 오르다가 중도포기했던 한라산 석굴암 탐방로를 재도전 하기로 했다!
이름이 왜 석굴암인지 예상은 가능하지만 직접 눈으로 봐야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탐방로의 끝에 다다르면 만날 수 있는 천연동굴에 불상을 모시는 절인 석굴암을 향해, 이틀만에 같은 장소인 등산로 입구에 서 있는내가 부끄럽기보단 대견한 느낌이 들었다. 포기해도 다시 도전하고, 성공해내면 되는거지! 나이가 들면서 부끄러움도 줄어들고, 다른사람 눈치를 보는일도 적어졌다. 20대의 나였다면 부끄러워서 포기하지 못하고 무리해서 꾸역꾸역 올랐을 건데... 낯짝이 두꺼워졌다기 보단, 요령이 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다시 시작된 인욕의 길이다. 첫날 바닥에 왜 이런걸 깔아놨냐고 괜히 트집잡던 길. 미끄러지지 말라고 해 놓은것 같은데, 나의 부족한 체력을 돌아보기 전에 멀쩡히 잘 정비해놓은 길을 탓했다니 한없이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20분정도 올랐을 때, 포기했던 구간이 다시 나타났다. 실제로 눈을 질끈감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눈을 감고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포기하던 타이밍의 나약했던 나 자신을 애써 떠올리지 않으면서 일부러 속도를 내서 산을 올랐다. 그 모습에 뒤에서 보던 친구는 이틀전과 같은 사람이 맞냐고 재차 되물었다. 놀라움 반, 기운을 북돋아주려고 하는 오버액션이 나머지 반인 느낌이었다. 사실, 친구가 다시 도전하자고 자신없어하던 나를 푸쉬해주지 않았다면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고마운 마음이 들어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면서 응원구호를 외쳐보았다. "웃자, 사랑하자~!" 제주도에 와서 하루에 한번 이상은 소리내서 꼭 외치고 있는 구호다. 올드하면서 정직한 이 구호를 들으면 생각보다 꽤 힘이 나고 웃게된다.
한시간정도 천천히, 바람이 불어오는 구간은 잠깐씩 쉬어가며 드디어 올라온 종착지, 석굴암. 암좌입구에서 관리하시는 분이 짐벌을 들고 호들갑을 떨며 올라오는 나를 무표정한 얼굴로 스쳐지나듯 쳐다보셨다. 석굴암까지 완주한 기쁨을 잠시 감추고, 경건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속으론 자축파티가 열리고 있는 심정. 궁금했던 석굴암 내부에 들어가서 조용히 3배를 올렸다. 템플스테이를 두번이나 경험했던 나인데, 법당예절이나 절하는법은 늘 헷갈린다. 옆에서 친구가 알려줘서 어설프게나마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다. 향냄새를 맡으며 조용히 불상을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왠지 인적이 드문 느낌이 들어서, 여기까지 기도드리려 오는 신자가 있으려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절을 올린 잠시 뒤, 절 옷을 곱게 차려입으신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와 절을 올릴 준비를 하셨다. 타이밍 좋게 친구와 나는 조용히 절을 빠져나왔다.
산은 아저씨들이 가는 장소가 아닌가 평소에 많이 생각했었는데, 등산 3일차가 되니 알아서 편안한 옷에 팔토시, 목엔 손수건까지 두르고 한사랑산악회 회장님 포스로 산길을 거닐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산은 모든 연령대를 위한 열린 장소라고 생각하기로 개념을 바꿨다.
석굴암을 5분정도 앞두고, 아주 천천히 쉼을 가졌던 천연냉동고 같았던 쉼터. 나무기둥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뼛속까지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이라 잊지않고 더운날 이 바람을 떠올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하산해서 이 뿌듯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셀카한장을 찍었다. 최근들어 땀흘려 무언가를 이룬 경험이 없었는데, 이날은 모자안이 땀범벅이 되었어도 찝찝함보단 보람과 뿌듯함이 더 앞서는 순간이었다.
대구에 잠시 출장을 갔었던 소중한 룸메이트가 제주도로 복귀했던 밤, 자축기념으로 야심한 시각에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체험단에 선정 된줄 알고, 예약해서 찾아간 고깃집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바로 옆 식당을 잘 못알고 갔던 웃픈에피소드가 있다. 잘못 온 손님인줄 알면서도 인심좋으신 사장님은 웃으시며 실제로 공짜고기를 내 오셨다. 그 인심과 서비스 정신이 요즘세상에 있을수 있는 일인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장장 사만원어치의 공짜고기를 먹어치우고, 동네 삼무공원에서 친구들 두명과 천천히 밤산책을 했다. 어둠속에서 지난 3일간의 안부를 물으며, 소소한 농담을 하던 그 순간이 훗날엔 그립고 또 그리운 순간이 될 것 같아서, 괜히 더 천천히 걷게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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